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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회 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브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윤동주는 스물네 살에 자신의 삶을 '욕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한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야 했던 한 청년의 이야기,
참회록」은 단순한 시가 아니라 그 시대를 통째로 담은 고백입니다.
녹이 낀 구리거울 — 부끄러움의 무게
「참회록」을 처음 제대로 읽었던 건 어느 가을 밤이었습니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 욕될까."
첫 연을 읽고 나서 제가 느낀 건 단순한 서정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자기혐오가 아니라, 시대에 의해 강요된 수치심이었습니다.
구리거울은 「참회록」에서 가장 핵심적인 상징 장치입니다.
여기서 구리거울이란, 동(銅) 재질의 금속 거울로 유리 거울이 없던 시대에 사용하던 물건인데, 아무리 닦아도 완전한 상(像)을 비추지 못하고 흐릿하게 왜곡됩니다.
윤동주는 이 왜곡된 거울을 통해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라는 시대 자체를 표현했습니다.
일제강점기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 아래 놓였던 시기를 가리킵니다.
제가 직접 읽어보니, 그 흐릿한 거울 앞에 선 윤동주의 표정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시인은 조상들 앞에 설 면목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개인의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나라를 빼앗긴 채, 언어마저 말살당할 위기에 처해 있던 민족 전체의 수치심을 혼자 짊어진 청년의 고백입니다.
저는 이 구절에서 윤동주가 얼마나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시인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 구리거울: 왜곡된 현실, 식민지 조선을 상징하는 핵심 오브제
- 파란 녹: 오랜 세월 쌓인 치욕과 굴욕의 흔적
- "어느 왕조의 유물": 단절된 역사와 정체성 상실에 대한 통탄
- 자화상(自畵像)적 시선: 거울을 통해 자신을 객관화하려는 시적 자아
식민지 청춘 — 스물넷의 참회록을 쓴다는 것
"만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이 한 줄을 읽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스물네 살이면 지금 시대엔 대학교 3, 4학년이거나 군 복무 중인 나이입니다.
꿈을 키워도 모자랄 나이에 자신의 생 전체를 부끄러움으로 정리해야 했다니,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웠습니다.
윤동주가 살았던 시대는 민족말살정책(民族抹殺政策)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습니다.
민족말살정책이란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인의 언어, 성명, 역사, 문화를 조직적으로 지우려 했던 식민지 동화 정책입니다.
조선어 교육이 폐지되고, 창씨개명(創氏改名)이 강요됐으며, 조선의 역사는 교과서에서 사라졌습니다.
그 시대에 모국어로 시를 쓴다는 것 자체가 저항이었습니다(출처: 국립중앙도서관 근현대 문학 아카이브).
제가 이 시를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지금은 참회록을 쓰고, 훗날 자유가 왔을 때 다시 참회록을 쓸 것이라는 이 상상은 해방에 대한 간절한 염원인 동시에 그 기쁜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 없는 희망이기도 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종류의 문장은, 희망이 거의 꺼진 상태에서도 꺼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사람만 쓸 수 있습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던 중 1943년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됩니다.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물일곱 해의 삶을 마쳤습니다.
당시 형무소에서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았다는 증언이 남아 있어 생체실험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다만 그 의혹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참혹한 이야기입니다.
국방의지 — 시인의 죽음이 남긴 질문
「참회록」의 마지막 연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밤마다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거울을 닦아도 보이는 건 어깨가 처진 자신의 뒷모습뿐입니다. 이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 경험상, 이 시를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왜 이 나라는 이 청년 한 명을 지켜주지 못했을까. 국권 피탈(國權被奪), 즉 국가의 주권이 외세에 의해 강탈당하는 상황은 단순히 정치적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윤동주 같은 한 개인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뒤바꾸는 재앙입니다.
국권 피탈이 어떤 문화적, 인간적 손실로 이어졌는지는 출처: 독립기념관 자료에서도 상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참회록」을 읽을 때마다 국방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남을 위협하자는 게 아닙니다.
윤동주가 살았던 시대처럼, 한 나라가 지킬 힘을 잃었을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평범한 청년의 꿈이고 언어이며 삶입니다. 억지력(抑止力)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억지력이란 군사적 역량을 갖춤으로써 상대가 먼저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는 힘, 즉 전쟁을 막기 위한 힘을 의미합니다.
강한 국방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화를 유지하는 수단입니다.
그 교훈을 윤동주의 삶은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제가 직접 이 시를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니, 윤동주가 참회한 건 자신의 나약함이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 시대에 그냥 살아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끄러워한 것입니다.
그 감각이 저는 오히려 가장 강한 의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윤동주 참회록에서 구리거울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A. 구리거울은 아무리 닦아도 선명해지지 않는 물건입니다. 윤동주는 이것을 통해 일제강점기라는 왜곡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을 표현했습니다. 제가 읽어보니 이 상징 하나가 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었습니다.
Q. 윤동주는 왜 스물넷에 참회록을 썼나요?
A. 당시 스물네 살의 윤동주에게는 꿈을 펼칠 어떤 공간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민족말살정책 아래 언어마저 빼앗기는 시대에, 그는 자신이 그저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했습니다. 그 참회는 나약함이 아니라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저항이었다고 저는 봅니다.
Q. 윤동주는 어떻게 사망했나요?
A. 1943년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된 윤동주는 1945년 2월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졌습니다.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았다는 목격자 증언이 있어 생체실험 의혹이 제기되지만 공식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다만 해방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참혹합니다.
Q. 참회록은 어느 시집에 실려 있나요?
A. 「참회록」은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집은 윤동주 사후인 1948년에 출간됐으며, 「서시」, 「별 헤는 밤」 등 그의 대표작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 시집을 손에 들었을 때 단순한 문학책이 아니라 한 시대의 유언장처럼 느껴졌습니다.
결론
윤동주의 「참회록」은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옵니다.
처음엔 슬픔으로, 두 번째엔 분노로, 세 번째엔 경외감으로 읽혔습니다.
스물네 살의 청년이 손바닥과 발바닥으로 거울을 닦으면서도 결국 보이는 건 어깨 처진 자신의 뒷모습뿐이었다는 그 이미지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습니다.
부디 다시 한번 이 시를 천천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해석보다 먼저 느낌으로 받아들이면, 윤동주가 왜 그 시대에 그 시를 써야 했는지가 자연스럽게 전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각이 남아 있는 한, 윤동주는 여전히 살아있는 시인입니다.
참고: 국립중앙도서관 근현대 문학 아카이브 / 독립기념관 /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